
여자를 지껄이게 하는 약은 있어도 침묵하게 만드는 약은 없다. (이나톨)
교육받은 여자라면 철학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칸트)
새털보다 가벼운 것은 먼지이고, 먼지보다 가벼운 것은 바람이다. 그 모든 것보다 가벼운 것은 여자다. 여자보다 가벼운 존재란 없다. (뮈세)
여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했어도 이 말보다 더 충격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만 한다." 물론, 여자들도 물러서지 않고 "남자와 멸치는 볶아야 맛"이라는 말로 응수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는 남자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여성 상위 시대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말이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말괄량이를 어떻게 길들여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당연히 "때려야 한다"는 의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애교를 부려본다느니 명품백을 사준다느니 하는 여성 맞춤형 답변도 있었지만 이러한 효과는 일시적일 뿐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즉, 약효가 떨어지면 도루묵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공포 분위기(다른 말로는 카리스마?)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되는 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로 다르게 놀자 소극장(구 하늘땅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이처럼 야생마 같이 날뛰는 '말괄량이'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오래된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함으로써 보는 연극이 아니라 참여하는 연극으로 거듭난 작품이라 하겠다.
다른 연극과 다르다는 느낌은 공연장을 들어서면서부터 받게 된다. 공연 준비에 바쁠 배우들이 미리 나와서 관객들을 맞아주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무대에 마련된 세트에서 기념촬영을 해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일체의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연극도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연 중에서 휴대폰을 끌 필요도 없거니와 전화가 오면 받아도 된다고 한다.
이 작품이 지향하는 가치는 배우들과 함께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스펙엑터'다.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내용으로 진행되는 다른 연극과는 달리 관객과 호흡을 맞추므로 내용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캐서린에 대한 조건을 전하는 부분도 그렇다. 정해진 내용 없이 관객들에게 묻는 식으로 조건이 완성된다. 관객 중에서 B컵 정도 크기의 가슴을 좋아한다고 하자 캐서린의 가슴 크기를 B컵으로 정하는 식이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는 영화로도 4편이나 제작되었다. 가장 최근 작품은 1980년에 나온 영국영화지만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1967년 이탈리아와 미국의 합작영화로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1968)'의 프랑코 제퍼렐리가 메가폰을 잡았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카타리나(캐서린) 역을 맡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제목만으로도 내용은 뻔하다. 그러니 대본대로만 해서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을 게다. 그러한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스펙엑터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한 편의 마당극을 보는 듯 흥겹게 진행된다. 당일 관객의 참여에 따라 전혀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신선한 부분이다.
그래서 여자를 때리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느냐구? 물론 그런 말은 아니다. 다만,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데 있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볼 필요는 있겠다. 처음에는 장인의 돈만 보고 캐서린과의 결혼을 선택했지만 페트루치오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어느새 캐서린을 최고의 신부로 바꿔놓았다.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라는 최진실의 대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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