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정점을 이미 지났다고 생각되는 시기가 되면 의욕마저 줄어들기 마련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와 위로 올라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사가 귀찮기만 하다. 그러다 보면 삶의 이유도 모르겠고 그저 의무로만 살아갈 뿐이다. 이제껏 하던 대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는 재미가 없다는 말이 한숨처럼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오르가즘은 처음부터 느껴지는 성적 감정이 아니다. 흥분기와 상승기를 거쳐야만 비로소 찾아오는 반응이다. 오르가즘이란 '성적 절정기'를 뜻하는 표현이지만, 달리 말하면 '삶의 희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짜릿한' 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삶의 정점'을 지났다는 말은 오르가즘이 지나간 이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뜨거웠던 몸이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인 이유에서다.
인생이 언제나 절정의 연속이라면 좋겠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삶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성교에서도 오르가즘을 느끼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강렬하다.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가버리는 그 찰나의 시간을 위해 애무를 하고 몸을 비빈다. 유감스럽게도 그 절정의 순간이 자주 오지는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성교 횟수가 줄어들듯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횟수도 줄어든다.
영화 '관능의 법칙'은 이처럼 절정의 순간이 지나버린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남편과 헤어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모처럼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해영(조민수)과 중년의 남편과 아직도 일주일에 세 번은 그 짓(?)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미연(문소리), 그리고 직장 상사와 아슬아슬한 연애를 즐기는 신혜(엄정화)가 그들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들은 그 순간이 오르가즘이라고 생각했고 절정은 지속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오르가즘이 한순간의 감정이듯이 그녀들의 절정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출가시키고 성재(이경영)와 살림을 합치길 바랬던 해영도 그렇고, 남편 재호(이성민)와 살을 섞는 것만이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이라 여겼던 미연도 그랬으며, 몰래 모텔을 전전하며 직장상사 성욱(최무성)과 위험한 사랑을 이어갔던 신혜도 그랬다. 짧은 쾌감의 댓가는 지나치리만큼 가혹했다.
자유롭게 살아왔던 성재는 같이 살기를 바라는 해영의 요구가 부담스럽고, 비아그라를 먹어야만 발기되는 재호는 미연의 육체가 부담스럽다. 5년 동안 사귀면서 아이가 생기지 않았는데 단 한 번 어린 여직원과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긴 성욱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그녀들에게 오르가즘이라 여겼던 남자들이 이제는 그녀들의 인생에 장애가 되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오르가즘은 정녕 사치란 말인가.
이 영화의 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로 19금 딱지가 붙어있다. 19금이라는 표현은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도 오직 하나의 이유로만 상상되는 이유에서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초반부터 화끈하게 풀어나간다. 일단 제목부터 '관능'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정도니 말해 무엇하랴.
섹스는 비단 남자만의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여자에게도 중요(?)한 문제리라. 이 영화는 여자들의 입장에서 섹스의 의미를 말한다. 코믹이 버무려져 있으므로 다소 과장된 면도 없지 않을 듯하고, 남자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내용인지에 대한 판단도 서지 않지만, 극장에서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여자들에게 어필하는 내용으로 생각된다.
요즘 '개그콘서트'에서는 젊은이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두근두근'이란 코너와 이판사판 중년의 좌충우돌 애정행각을 그린 '끝사랑'이라는 코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영화를 그 코너들에 비유하면 '두근두근' 보다는 '끝사랑'에 가깝다. 더 늙기 전에 불타는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몸이 먼저 불에 타게 생겼다는 해영의 말은 그래서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관능의 법칙(2013)
드라마, 코미디 | 한국 | 108분 | 2014.02.13 개봉 | 감독 : 권칠인
출연 : 엄정화(신혜), 문소리(미연), 조민수(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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