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울면서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내가 사는 세상


상냥한 아내가 있고, 토끼 같은 자식이 있으며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중산층 남자라면 더 부러울 것이 없다고 봐도 된다. 아내가 여우 같은 요부였으면 좋겠고, 자식이 머리 좋은 수재였으면 좋겠으며 탄탄한 중견 사업체를 거느릴 정도로 성공(?)한 삶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정도만 돼도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되겠다.

대도시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설계사 료타가 바로 그런 사내다. 영화배우 한효주를 닮은 아내는 차분한 성격의 여인이고, 귀엽고 깜찍한 아들은 순종적이다.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하고 가정은 화목하다. 살면서 하나를 이루기도 쉽지 않을진대 무려 이 모두를 얻었으니 행복한 사내라 할만하지 않은가. 더불어 대도시에서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료타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아들 케이타가 사실의 자신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의 아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6년 전 병원 측의 실수로 아이가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 Like Father, Like Son, 2013)'는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는 상태였다. 혼자만의 문제라면 알아서 결정하련만 양쪽 집안의 문제이다 보니 원만한 합의가 필요했다. 6년 동안 키운 아이를 하루아침에 다른 집으로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고, 6년 동안 얼굴도 모르고 살아왔던 아이를 내 아이라고 선뜻 데려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각자 키우자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는 해도 정말 낳은 정을 외면할 수 있을런지 확신할 수 없거니와 무엇보다 저쪽 부모를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나만 좋다고 내 좋은 쪽으로만 요구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두 아이 모두 키우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6년이라는 정을 떼기 어려운 건 저쪽도 마찬가지다.

언뜻 스토리만 보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영화는 뻔한 소재로도 얼마나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낳은 정과 기른 정 중에서 일방적인 선택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런 기막힌 상황을 맞이하게 된 남자의 복잡한 심경을 천천히 훑어나갈 뿐이다. 그러면서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자식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요즘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아무래도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영화가 주는 울림은 더 크게 다가온다. 두 아이를 두고 갈등하는 료타의 심정도 그렇고,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을 닫는 케이타도 그렇다. 재미있느냐 없느냐를 말할 게 아니라 어떻게 봤느냐에 대해 말해야 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두 명의 아빠가 나온다. 하나는 대도시 엘리트 료타이고, 다른 하나는 소도시 전파상 주인 유다이다. 그런 만큼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료타는 엘리트답게 이성적으로 케이타를 키우고, 유다이는 감성적으로 류세이를 대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료타는 도시스타일로 아이를 키우고 유다이는 전원스타일로 아이를 대한다고 하겠다.

형편이 다르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료타 쪽으로 급격히 끌리는 것이 사실이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자란 류세이가 료타에게 오면서 출세했다는 속물적인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무식하고 가진 것 없는 유다이도 료타 못지않게, 어쩌면 료타보다 더 좋은 아빠라는 점을 발견하게 되면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외형적인 조건으로는 료타 보다 뒤질지라도 유다이에게는 료타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감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관객 입장에서 료타가 케이타와 류세이를 다 맡아서 키우는 게 좋겠다고 생각되었으나, 중반 이후부터는 차라리 유다이가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을 유다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좋은 아빠, 좋은 부모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주는 울림은 상당히 큰 편이다.

세상에서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아이를 낳았다고 부모가 거저 되는 것도 아니다. 아빠와 엄마라는 호칭을 얻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엄마와 아빠로 불리는 것과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영화다. 료타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케이타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순간 힘겹게 버텨왔던 눈시울은 터지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울면서 료타도 우리도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 Like Father, Like Son, 2013)
드라마, 가족 | 일본 | 121분 | 2013.12.19 개봉 |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후쿠야마 마사하루(료타), 오노 마치코(미도리), 마키 요코(유카리), 릴리 프랭키(유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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