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감정의 배신에 대하여, 그와 그녀의 목요일 내가 사는 세상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여도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 왠지 가슴 한켠이 시린 까닭에서다. 그러므로 사랑이라 생각하고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실망만 하고 돌아서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흔들리는 이유다. 누가 나서서 '사랑이다' 또는 '사랑이 아니다'라며 판결을 내려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연옥은 정민을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민도 자신에 대하여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 믿었다. 연옥은 파리 특파원 시절에 정민이 찾아와서 한 달간의 동거를 하게 되고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정민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옥이 다가가려 하면 정민은 그 자리에 없었다. 매번 연옥이 다가오기 전에 한 발 먼저 떠나가 버리는 탓이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정민은 예고도 없이 연옥에게 다가와서는 연옥의 마음만 흔들어 놓고 떠나곤 했다. 연옥이 돌아볼 즈음이면 정민은 그 자리에 없었다. 새처럼 날아와서는 또다시 새처럼 훌쩍 날아가 버린 것이다. 파리에 있던 연옥을 찾아왔을 때도 그랬고, 연옥이 정민의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남겨두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옥은 정민에게 어떤 존재란 말인가.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1에서 공연 중인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이처럼 엇갈리기만 하는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여자와 여자에게 머물지 못하고 홀연히 떠나가는 남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리고 있다. 흡사 심수봉의 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정민이 연옥을 찾아오던 첫 번째 목요일도 그랬다. 연옥은 늘 그 자리에 있었어도 정민은 항상 자기 멋대로였다.
 
이 작품은 지난해 예술의 전당에서 조재현, 배종옥 주연으로 공연되었을 때부터 보고 싶었던 연극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평소 배종옥을 흠모하고 있던 터라 그녀의 연기를 무대에서 보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컸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 버렸는데 이번에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조재현은 그대로였지만 배종옥이 빠졌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공연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들은 조재현을 포함해서 정은표와 박철민이 정민 역을 맡았고 유정아와 정재은이 연옥 역을 맡았다. 지난 공연에서도 조재현과 정웅인의 더블 캐스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남자 출연진들은 비교적 화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배종옥이 없는 여자 출연진이 다소 빈약해 보이기는 했으나 막이 오르자 그런 생각이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내가 본 공연의 주인공은 박철민과 정재은이 맡고 있었다. 박철민이야 명품 조연으로 익히 알려진 연기파 배우였으니 달리 더 설명할 일도 없지만, 연옥을 맡은 정재은은 달랐다. 목소리도 고왔고 연기도 안정적이었다. 박철민에 대한 기대로 보러 갔다가 정재은이라는 배우에게 홀딱 반하고 나올 만큼 매력적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정재은은 지난해 공연에서도 배종옥과 함께 연옥을 맡아서 열연했던 배우였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정민의 제안으로 시작되는 연옥과 정민의 정례 만남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재혼을 앞두고 있는 정민은 문득 연옥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며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서 주제토론을 하자며 제안한다. 연옥을 대하는 정민에게서 진지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민에게 있어 연옥은 불편하지 않고 편한 상대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언제 찾아가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고향과도 같은 존재 말이다.
 
그러나 연옥은 다르다. 죽음을 앞두고 정민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오랜 친구로서, 그리고 자신이 낳은 딸의 아빠로서. 연옥은 위암을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기에 남은 시간 동안 신변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인데 갑자기 나타난 정민으로 인해 혼란스럽기만 하다. 도대체 이 남자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박철민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보던 대로 정민이라는 남자를 잘 표현해 냈다. 또한, 지난해에 이어 다시 연옥을 맡은 정재은은 박철민에게 눌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한다. 다만, 내용이 잔잔하다 보니 규모가 작은 소극장이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니 그에 걸맞는 규모의 극장이 필요했겠지만, 오히려 큰 규모가 몰입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222
156
45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