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죽을 일도 많다. 배고파 죽겠고 배불러 죽는다. 추워서 죽겠고 더워서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고 보기 싫어 죽겠다. 감정을 극대화한 표현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죽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게 현실이다.
여기 재미있어 죽을만한 연극이 한편 있다. '죽여주는 이야기'라는 제목부터 죽여준다. 단지 죽여주는 정도라는 말이 아니라 그야말로 '죽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살 연구소를 찾아 죽으러 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죽으러 온 사람들을 죽여주는 이야기이니 정말 죽여주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웃겨서 죽는다. 의뢰인을 죽여주기보다는 관객을 죽여주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치 개그콘서트라도 보고 있는 듯 개그코드가 가득하고 곳곳에 숨겨놓은 유머들을 찾는 재미도 솔솔 치 않다. 보고 나서 재미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시작부터 관객들을 죽여주기 시작한다. 대부분 핸드폰을 꺼달라는 안내를 하거나 준비한 경품을 제공하는 등으로 활용되는 시간이지만 '죽여주는 이야기'는 오프닝도 작품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마음껏 웃겨준다. 오프닝에만 무려 15분에서 20분 가까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출연진은 단 4명뿐이지만 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결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 있는 팀워크를 보여준다. 게다가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보니 그날 관객에 따라 재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실제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아이유는 이날 관객 중의 한 명이 맡아서 녹록지 않은 댄스 솜씨를 자랑하기도 했다.
'죽여주는 이야기'라는 제목 앞에는 '명품 코믹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매표소에도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가 있고 '뮤지컬' 죽여주는 이야기가 따로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죽여주는 이야기'는 연극과 뮤지컬로 동시에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연극은 지난 2008년 5월부터 장기 공연 중이고 뮤지컬은 2011년 12월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배우와 배경과 내용이 모두 다르다고 하니 둘 중의 하나를 보거나 둘 다 봐도 무방하겠다.
'김종욱 찾기'와 같이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도 있지만 대부분의 뮤지컬들은 엉성한 내용과 친근하지 못한 멜로디로 인해 외면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와 달리 '죽여주는 이야기'는 뮤지컬로 보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정도로 배우들의 노래 실력도 출중하고 멜로디도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흥겹다. 다만 자살이라는 소재를 웃어넘기기에는 요즘의 사회적 현실이 너무 무겁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