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언니 때문에 다시보게된 잔혹동화 내가 사는 세상


"동화가 끝나면 현실이 온다"

'신데렐라 언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마지막에 내보낸 안내문이다. 물론 '신데렐라 언니'의 이야기가 아니라 후속작 '제빵왕 김탁구'에 대한 안내이지만 동화와 현실에 대한 묘한 대비를 일깨워 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아이리스'와 '추노'로 이어지면서 지난해 후반부터 시작된 수목드라마의 절대강자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신데렐라 언니'로 동화는 막을 내리고 이제부터 힘겨운 현실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가 상대하기에는 sbs '나쁜 남자'와 MBC '로드 넘버 원'이 지나치게 강한 상대인 탓이다.

이는 "계모가 온 뒤부터 신데렐라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로 시작되는 '신데렐라'를 떠올리게 만든다. 동화처럼 좋았던 시절은 가고 끔찍한 경쟁만 남은 현실 때문이다. 어쩌면 '제빵왕 김탁구'로서는 '신데렐라 언니'가 동화처럼 순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처럼 숨겨진 음모로 가득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전작들이 꼭 붙잡아 놓았던 시청자들을 '신데렐라 언니'가 대부분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제빵왕 김탁구'는 힘겨운 하루하루가 될게 분명하다.

이런 '신데렐라 언니' 때문에 다시 읽게 된 책이 있다. 순수한 동화로 알고 있던 '그림동화'의 실체를 알려주는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가 그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동화'는 북유럽의 전설들을 순화시켜서 아이들에게 읽혀온 것으로 원전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가 어린 자식들에게 태연하게 읽어줄 수 있겠는가"라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였다. 그림 형제로서는 임신이나 근친상간 등 성에 관한 내용들을 대폭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계모에게 버림받고 일곱 난쟁이와 살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 '백설공주'가 실제로는 아버지를 놓고 친어머니와 싸우는 모녀 사이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에 의해 쫓겨난 것이고 숲 속에서 만난 일곱 난쟁이에게 있어 백설공주는 성적 노리개에 불과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들이었다. 왕자의 키스로 잠에서 깨어나게 되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또한 마찬가지다. 어렵게 얻은 공주의 운명에 대해서 어느 늙은 선녀는 이렇게 말한다.

"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면 북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그대로 죽을 것이다."

"그 무슨 터무니없는 말이냐? 공주가 죽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

"제 힘으로는 조금 전의 예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공주님은 북에 손을 찔려 쓰러지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100년 동안의 깊은 잠에 빠질 것으로, 100년이 지나면 왕자님이 나타나 공주님을 잠에서 깨워줄 거예요."

갓 태어난 사랑스러운 공주의 얄궂은 운명에 고민하던 왕은 예언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나라 안의 모든 학자들을 초대했다. 그리고는 함께 머리를 쥐어짜며 의문을 풀어나가던 중 이윽고 어느 학자가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북은 일종의 비유인 것 같습니다."

"비유라고?"

"예를 들면, 북에 손이 찔려 피를 흘린다는 것은 공주님이 15세에 초경을 맞이하여 어른이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아이로서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실을 뽑는 것은 여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북은 여자의 소중한 장소에 있는 작은 돌기물이 아니겠습니까. 즉 공주님은 15세 때에, 그곳을 희롱하는 장난을 하다가 실수로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자위의 죄를 범한 벌로 깊은 잠에 빠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닙니다. 북은 그 모양으로 볼 때 남근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공주님은 15세가 되면 그것에 찔려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격심한 통증과 대량의 출혈 때문에 정신을 잃고 그대로 잠이 든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왕은 남자들로부터 공주를 격리시킨 채 여자가 아니라 사내처럼 키우기 시작했다. 남자 시종들로 하여금 공주 근처에는 아예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고 남자처럼 무릎 근처에 장식용 단추가 달린 짧은 바지와 소매가 달린 옷을 입혔고 머리도 짧게 깎았으며 남자 같은 말투를 사용하도록 했다. 그렇게 15살만 넘기면 되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왕과 왕비는 오랜만에 외출을 했고 기어코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공주가 15살이 되던 해였다. 해방감에 공주는 이방 저방을 마음껏 돌아다녔고 결국 어느 한 시종을 만나게 되어 우려했던 대로 잠에 들게 된다.

사실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는 흡사 삼류 성인소설을 읽는 듯 여겨질 정도였다. '신데렐라'편은 비교적 점잖은 수준이었지만 '백설공주'의 경우 아빠와의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었고 난쟁이와는 원조교제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가 아름답고 순수한 동화로 탈바꿈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오히려 그런 순수한 동화를 불순한 의도에서 변질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99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신데렐라 언니' 때문이다. 잊고 있었던 이 책을 통해서 10년 전하고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는 것은 '신데렐라 언니'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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