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에서 중국 문명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듯이 서양에서는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영향이 크다. 이러한 영향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피로회복제의 이름 '박카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디오니소스, Dionysos)이고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니케, Nike)이다. 여성 속옷 브랜드 '비너스' 또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베누스, Venus) 이름이다.
이 정도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서양의 문명이나 문화에 대해서 이해도를 높이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두는 게 좋다. 단지 재미를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미쳐 몰랐던 서양 문물에 대해서 눈이 틔여질 것이란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국내에 있어서 그리스 로마신화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은 그중에서 다소 특이한 책이다. 사건 순이나 연대기 순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정리하지 않고 영웅 순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영웅들의 활약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약 2000여 년 전에 쓰인 서양의 고전 '플루타르코스 영웅 열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저자 이윤기는 이에 대해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웅들의 본색을 되살피는 작업을 통하여, 다양한 경로로 우리의 언어에 삼투해 들어와 있는 서양 문화의 무수한 표현법과 수사법을 조명하고 여기에다 피를 통하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풍부한 삽화로 인해 보는 재미도 그에 못지않다. 게다가 상상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을 이해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해결책도 없을 것이다. 책값이 다소 비싸지만(1,2권 각 13,000원) 포함되어 있는 삽화들의 양을 고려하면 비싼 만큼 값을 하는 듯 보일 정도다.
2권으로 나누어진 이 책에는 모두 12명의 영웅들의 활약이 소개되어 있다. 1권에는 미궁의 정복자 테세우스, 세계의 지배자 알렉산드로스, 스파르타의 아버지 뤼퀴르고스, 현자 솔론, 공명한 의인 아리스테이데스의 내용이 있고 2권에는 오래된 미래 페리클레스, 비운의 웅변가 포키온, 소크라테스가 사랑한 남자 알키비아데스, 불운한 정복자 퓌로스, 물의 철학자 탈레스, 최초의 철학자 퓌타고라스, 디오게네스의 '개 같은 내인생'편이 담겨있다.
아쉬운 점은 신문에 연재된 내용이라서 그런지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간혹 눈에 띄고 한 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걸로 보이는 분량을 굳이 2권으로 만들어 책값을 높였다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영웅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게 만들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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