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아느냐 이땅의 가장들의 비참한 현실을, 날아라 펭귄 내가 사는 세상


에덴동산에서 별다른 걱정거리 없이 살아가던 아담이 하와가 건네준 금단의 열매를 먹는 순간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뱀의 꼬임에 빠졌던 하와도 아담의 탈선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그로 인해 하와는 생산의 고통을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누구로 인해서 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만이 남을 뿐이었다.

여기에서부터 해묵은 논쟁이 시작된다.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시작된 인류의 원죄가 아담 때문이냐 혹은 하와 때문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남자의 형벌이 더 크냐 아니면 여자의 고통이 더 크냐 하는 점이다. 남자들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당해야 하는 수고와 수모를 아느냐며 큰 소리치고 여자들은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어려움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느냐며 핏대를 세운다.

저울로 측정할 수 없는 이상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령 저울로 무게를 잴 수 있다고 해도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느 하나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가장은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아내는 살림을 챙겨야 한다. 물론 두 가지 다하는 가장도 있고 아내도 있겠지만 어쨌든 역할은 나눠질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조기유학이 늘어나면서 기러기 아빠라는 존재들이 늘어가고 있다. 방송에서도 기러기 아빠라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연예인들도 많다. 콧수염으로 상징되는 김흥국이 그렇고 최근 들어 예능인으로 맹활약 중인 부활의 이러 김태원도 그렇다. 아이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해외로 보내고 그 아이를 보살펴주기 위해 아내도 같이 떠나보내다 보니 홀로 남게 되는 기러기들이다.

기러기라는 존재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 탓이다. 돈이 있어도 견디기 쉽지 않은 생활이거늘 돈마저 없다면 그야말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봉급이라고 타봐야 외지로 다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별로 없게 된다. 해외에 나가있는 아내와 자식에게 있어 아빠라는 존재는 한마디로 돈 버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한 존재도 있다. 바로 펭귄으로 분류되는 아빠들이다. 기러기는 가끔이라도 날아갈 수 있다지만 펭귄은 날 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꼼짝 마" 신세가 되고 만다.

영화 '날아라 펭귄'은 이런 펭귄들의 모습이 담긴 이 시대 가장들의 자화상과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3가지 종류의 가장이 등장하는데 모두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왜 저러고들 사나 싶겠지만 그들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게 바로 에덴동산에서 신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시작된 형벌인 까닭에서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아내를 위해서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처자식을 해외로 떠나보낸 남자들만 펭귄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이 살면서도 펭귄으로 사는 남자들도 많다. 아내의 등쌀에 학원으로 뺑뺑이 도는 아이와 얼굴 보기도 힘든 아빠들, 열심히 살았지만 정년퇴임 후에는 아내에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아빠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가족과 같이 살면서도 외딴섬에 홀로 동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에 대한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 대한 논쟁이 무의미한 줄은 알지만 아무래도 주제의식이 초라한 남편, 불쌍한 가장이다 보니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불편할 수는 있겠다. 물론 이 영화의 사례들이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이라는 위치가 그리 쉬운 자리만은 아니라는 점은 알아주었으면 싶다. 다만 임순례 감독의 연출이 다소 거칠어서 TV단막극을 보는듯한 느낌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날아라 펭귄(Fly, Penguin, 2009)
드라마 | 한국 | 110분 | 2009.09.24 개봉 | 감독 : 임순례
출연 : 문소리, 박원상, 손병호, 최규환, 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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