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밀하고 날카로운 연출력이 요즘 아이들의 깊은 내면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잘 만든 영화."(봉준호 감독)
'괴물'로 한국영화사의 흥행성적을 새로 작성하고 '마더'로 미국 비평가협회에서 극찬을 받은 바 있었던 봉준호 감독이 영화 '파수꾼'에 대해서 한 말이다. 그는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잘 만든"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이 받은 충격을 대신했고 칭찬을 아끼지도 않았다. 또한 미국 영화전문지 할리우드리포터에서는 "김기덕 박찬욱 이창동 봉준호 같은 국제적 명성을 이을 차세대 감독 중 가장 두드러진 감독"이라는 말로 윤성현 감독의 잠재성을 인정했다.
영화 '파수꾼'을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조니워커의 킵워킹펀드에 참가하고 있는 참가자와 인터뷰하던 중 그를 통해서 윤성현 감독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서 '파수꾼'이라는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독립영화감독으로서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 윤성현 감독이고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도 '파수꾼'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말도 했다.
다소 친근하지 않은 제목의 영화 '파수꾼'이 이처럼 영화 관계자들에게 극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 보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영화이고 장편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 영화가 지니고 있는 비밀을 알아내려면 직접 보는 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영화가 어떻길래 다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일까?
'파수꾼'을 보면서 봉준호 감독처럼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감독의 연출은 섬세했고 배우들의 연기는 깔끔했으며 청춘의 우정과 방황 그리고 사소한 오해가 빚어낸 참담한 비극을 담고 있는 내용도 담백했다. 독립영화라는 표현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세련된 영화였고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기다렸다! 이렇게 미친 작품과 감독이 나타나주기를…"이라며 극찬했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흔히 독립영화는 저예산 영화와 의미를 같이 한다. 적은 비용으로 찍다 보니 촬영 현장을 제대로 갖출 수도 없을뿐더러 모든 게 저가이고 싸구려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도 낯설고 무엇보다 극본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독립영화가 몇 분에서 몇십 분에 불과한 것도 그 이상을 채우기 힘든 극본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극본의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영화의 완성도가 높을 리 없다.
하지만 '파수꾼'은 달랐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맡았지만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었고 실제 고등학교 교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착각을 들 정도로 실감 났다. 주연 배우를 맡았던 기태 역의 이제훈이나 동윤 역의 서준영, 희준 역의 박정민 등은 모두 신인이라고 할 만큼 출연작이 적었지만 연기는 자연스러웠고 실제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리얼했다. 특히 기태 역의 이제훈은 제2의 류승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은 아닐까. 배우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그들로 하여금 배역과 구분 없이 연기하도록 만들어 내는 그런 윤성현 감독의 능력 말이다. 물론 관객들은 그러한 부분까지 볼 필요도 없고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독립영화라던가 신인감독 혹은 신인 배우라는 사실들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그만큼 영화에 몰입했다는 의미일게고 그만큼 영화가 훌륭했다는 뜻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거다.
당시에 이 영화를 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영관이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대부분 하루 1~2회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오전이나 오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제목이 그리 인상 깊은 것도 아니고 감독의 이름이 알려진 것도 아니며 출연진이 대단하지도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1년 3월 3일에 개봉한 이래 근 한 달 동안 1만3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파수꾼(2010)
드라마 | 한국 | 117 분 | 개봉 2011.03.03 | 감독 : 윤성현
주연 : 이제훈(기태), 서준영(동윤), 박정민(희준), 조성하(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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