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들이 액션영화에 환장하는 것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잊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즉 현실에서는 찌질하고 허약할지라도 영화를 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철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와도 여자와 남자의 평가가 다른 것도 그 이유에서다. 여자들에게는 단순히 때리고 부수는 게 전부였던 영화에 불과하지만 남자들에게는 액션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린 호넷(green hornet)' 또한 여자와 남자들 간의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는 액션영화다. 단순히 때리고 부수는 영화인 탓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자와 남자뿐만 아니라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특이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주인공 자체가 정의를 위해서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실컷 놀고먹다가 심심해서 영웅이 되는 다소 특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존경해줄 수 없는 영웅인 셈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 중에서는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온 영웅도 있고 '스파이더맨'처럼 빈털터리 영웅도 있었고 이소룡처럼 무술의 달인도 있었지만 '배트맨'은 거대한 성과 자신을 돌봐주는 집사까지 거느렸던 부자였고 '아이언맨'은 아예 무기 판매로 어마어마하게 재산을 모았던 무기상이기도 했었다. 시대를 반영하듯 요즘에는 돈이 없으면 영웅짓도 못 해먹는 세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찌질이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린 호넷'의 브릿 레이드(세스 로건)는 미디어 재벌의 외아들로 밤마다 파티와 여자로만 살아오던 놈팡이였다. 이러한 설정은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굳이 '아이언맨'을 떠 올렸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전까지 토니와 브릿은 그야말로 개차반, 즉 인간쓰레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맨'과 '그린 호넷'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아이언맨'은 다소 무거운 스토리인 반면 '그린 호넷'은 경쾌하고 가볍다. '아이언맨'이 인류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것과 달리 '그린 호넷'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정의(?)를 위해 싸운다. 무술의 달인 이소룡이 액션 위주였다면 코믹 무술의 달인 성룡은 액션에 코믹을 가미해서 정통 무술영화를 선보였던 이소룡과는 다른 길을 간 것과 비교해볼 수 있겠다.
2011년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했던 '그린 호넷'은 지독한 악평이 난무하는 가운데 영화진흥위원회가 입계하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르면 2011년 2월 5일 06시 현재까지 149,664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데 그쳤다. 같은 날 개봉했던 '타운'(72,567명)이나 '가필드 펫 포스'(28,100명)와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성적이지만 '조선명탐정'(2,082,609명)이나 '걸리버 여행기'(1,258,864명) 또는 '평양성'(1,050,699명)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실적이 아닐 수 없다.
'그린 호넷'에 대한 악평이 난무하는 이유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하고 무조건 때리고 부수는 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액션 영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명감'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하겠다.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밤마다 파티와 여자에 빠져 살다가 문득 영웅놀이가 해보고 싶어진 그래서 찌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에 대한 실망의 표출인 것이다.
'그린 호넷'이 1966년 미국 ABC에서 TV시리즈로 방영될 당시 브릿의 운전기사이자 조력자이면서 진정한 영웅으로 그려지는 케이토 역을 이소룡이 맡았다고 한다. 영화 '그린 호넷'에서는 이소룡이 맡았다던 케이토 역을 맡은건 주걸륜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호평을 받는 점이 있다면 주걸륜의 등장이었다. 간간이 코믹한 내용이 숨어있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좋은 영화이지만 다소라도 액션에 대한 철학을 원한다면 피하는 게 좋겠다.
그린 호넷(The Green Hornet, 2011)
액션 | 미국 | 118분 | 2011.01.27 개봉 | 감독 : 미셸 공드리
출연 : 카메론 디아즈(르노어), 세스 로건(브릿/그린 호넷), 주걸륜(케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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