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여인의 눈물, 체인질링 내가 사는 세상



어릴 적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소리 한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 놀리는 게 취미였던 동네 아줌마들이 아이의 삐죽이는 모습이 보고 싶어 이리저리 놀릴 때면 꼭 등장하는 단골 테마인 탓이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말에 서럽게 울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완전히 속아넘어간 것이다. 이러한 장난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이어지기도 하는데 좀 조숙한 아이들은 언젠가는 친엄마를 찾고 말겠다는 다짐까지 하기도 한다. 아무튼 당하는 입장에서는 고약한 장난이기는 하지만 악의는 없기에 그나마 용서가 되는 장난이기도 하다.

체인질링이라는 단어는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르다면 주워온 것이 아니라 바뀌었다는 점이다. 체인질링(changeling)의 단어적 의미는 '남몰래 바꿔치기한 어린애', 즉 '요정이 앗아간 예쁜 아이 대신에 두고 가는 못생긴 아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했던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와 일맥 상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하지만 뉘앙스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우리는 주로 놀릴 때 쓰는 말이지만 체인질링은 겁주거나 혼낼 때 사용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통 점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영화 체인질링도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처럼 뒤바뀐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어쩌면 아이가 뒤바뀐 것뿐이라면 차라리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최소한 아이의 생사는 확인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가 사라진 후 전혀 다른 아이가 나타났을 뿐 여전히 아들의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상황은 사람을 더욱 미치게 한다. 뿐만 아니다. 사라진 아이를 찾아야 할 경찰은 오히려 자기합리화에 급급하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에 만족할 뿐이다. 6개월 동안 받았던 비난을 어떻게든 막으려고만 할 뿐 뒤바뀐 아이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더불어 한 여인의 고통은 더더욱 안중에도 없다.

이 영화는 1920년대 LA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벌건 대낮에 아이가 납치되었다는 점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경찰이 자행했던 공권력의 남용은 더더욱 충격적이었고 더구나 그 내용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점 또한 적지 않은 충격을 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사실이 다행일 뿐.

영화 체인질링은 두 명의 인기 배우가 함께했다. 주연배우로는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가 모처럼 차분한 감정연기를 선보였고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명배우 존 말코비치 또한 아이 엄마를 돕는 구스타프 브리글렙 신부 역을 맡아 굵직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또 있다. 영원한 '석양의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하지는 않지만 연출을 담당했다. 그는 국내에서 이 영화보다 두 달 후에 개봉했던 '그랜 토리노'에서 주연 및 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실제로 두 영화가 비슷할 정도로 잔잔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은 두 영화가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듯 보일 정도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실종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쩌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실종 그 자체보다는 실종에 대처하는 사회적인 자세에 대해 말하고자 싶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종이라는 문제는 그저 개인적인 일로 치부될 일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회가 나서서 함께 찾아주고 위로해 주어야 할 큰 슬픔인 탓이다. 그래서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체인질링(Changeling, 2008)
드라마, 범죄, 미스터리 | 미국 | 141 분 | 개봉 2009.01.22 |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안젤리나 졸리(크리스틴 콜린스), 존 말코비치(구스타브 브리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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