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나로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시설이야기



회사를 나오게 된 것은 결코 자의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등을 떠밀어도, 그 어떤 수모로 망신을 준다 해도 끝까지 붙어있으려 했다. 뒤처졌거나 버려졌다고 하는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난 20여 년간 조직을 위해 희생과 봉사한 것에 대한 보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아이들 학업이나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아이들 뒷바라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만을 바랬다. 그럴 수 있다면 급여 삭감마저도 받아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회사는 나로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무조건 나가라고만 했다. 20년을 일했는데, 그 기간 동안 가정도 등한시하면서까지 충성을 바쳤는데 이제는 필요 없으니 그만두란다. 그나마 마지막 자존심이라면 끝까지 업무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남은 휴가도 쓰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근무하면서 모든 본부원들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쫓겨나는 일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게 지난 20년이라는 세월을 부정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었다.

그게 2017년 6월 30일이었다. 그리고 1년 7개월이 흐른 2019년 2월 7일.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갖게 된 또 다른 직업. 나이 오십에 막내 기사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모든 게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급여는 반의반토막이 났고 그간 누려왔던 복지는 꿈도 꿀 수 없으며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기사지만 이게 현실이니 받아들여야 했다.

이 블로그는 초보 기사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어느 오십대의 발자취다. 누군가가 말했다. 세상에 위대한 일은 없고 다만 위대하게 일하는 사람만 있다고. 같은 일을 하더래도 누구는 대충하고 누구는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다. 다시 20대 시절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자 한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참 열심히 살았노라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덧글

  • 깜찍한 동장군 2020/04/20 20:23 # 답글

    글쓰는 일 하셨던 것 같은데 관리직이 더 좋은 일자립니다.

    잘 관리된 조경만큼 심신이 안정되게 할 수 있는 일 없고
    방해받지 않고 전신운동이 돼요.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다른 공부도 틈틈히 하셔서 터닝포인트로 만드셨으면 해요

    영화는 적당히 보시구요.
    그게 명상량이 적어 그렇습니다
  • Robin 2020/04/29 01:53 #

    틈틈히 공부해서 터닝포인트로 만들라는 말씀 가슴 깊히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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