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언제나 화약냄새가 난다, 그랜 토리노 내가 사는 세상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서는 언제나 화약 냄새가 난다. 그의 이름은 망토 차림으로 방아쇠를 당기던 석양의 무법자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마카로니웨스턴의 시대가 지났어도 그는 총을 놓지 않았다. 다시 도시로 돌아와 정의를 구현하는 총잡이 '더티 해리'로 변신한 탓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서 화약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그는 언제고 정의를 위해서라면 찡그린 표정으로 총을 집어 들 것만 같다. 그와 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지난 2009년 2월, 나는 2주 동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무려 세 편이나 보게 되었다. 종로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최된 '세르지오 레오네' 회고전을 통해서였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열풍 속에 다시금 재조명된 마카로니웨스턴을 정리해보는 자리였다. 64년작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65년작 석양의 건맨과 66년작 석양의 무법자를 차례로 보고 나니 비로소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동경해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이 제대로 정리될 수 있었다. 그는 평생토록 총잡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후에 또다시 그의 영화를 두 편 연달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하나는 감독으로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독과 주연을 겸한 작품을 통해서이다. 하나는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체인질링'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인 꼬마와의 우정을 그린 '그랜 토리노'였다. 체인질링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흔적을 찾기 쉽지 않았으나 이 영화가 그랜 토리노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 것은 순전히 배경음악 때문이리라.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음악과 더불어 잔잔하게 퍼지는 감동이 두 영화를 잊지 못하도록 해주고 있었다.

그랜 토리노는 아내를 잃고 혼자서 살아가는 괴팍한 노인네가 서서히 주변에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제목에 사용된 그랜 토리노는 72년식 미국 자동차의 이름이다. 이 자동차가 영화 제목으로 사용될 만큼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은 그 차를 통해서 연결과 소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랜 토리노 이전을 세상과의 단절이라고 할 때 그 이후는 세상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고집불통의 노인네와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그랜 토리노였다. 세상과 함께할 줄 몰랐던 사내가 그랜 토리노를 통해서 비로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잔잔하게 흐른다. 옆집에 사는 나약한 소년 타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고초를 겪기도 하고 그의 누나 수가 흑인들에게 수모를 당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옆집 할아버지 월트가 보호자가 되어준다. 그러면서 차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비로소 세대를 넘는 친구가 되어간다. 타오에게는 남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듬직한 친구였고 수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이었다. 상영시간 116분 중에서 100분은 그렇게 이야기가 흐른다. 서로 간의 마음을 열기까지 그리고 마음을 열고나서의 이야기들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랜 토리노의 마지막 15분은 마치 '내일을 향해 쏴라'를 연상하게 만든다. 월터의 취후의 선택은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서 영화가 더욱 감동적일 수 있었으리라. 어쩌면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막다른 곳까지 몰렸던 부치와 선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월터는 마지막까지 친구를 위해 희생을 각오했고 그로 인해 영화는 감동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진한 여운이 남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6개 상영관에서만 개봉되었다고 한다.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유명한 배우도 출연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하지만 그 이후 관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19개, 84개, 2808개까지 상영관이 확대되었고 결국 개봉 5주차에는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와이드 오프닝 첫 주말 흥행성적은 2,950만달러였고 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 중에서 개봉 첫 주에 올린 최고의 성적이었다. 게다가 2월 22일까지 1억 3천 4백 만불의 수익을 거둬 2009년 개봉작 중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독립영화로서 폭발적인 관심과 성원이 이어지고 있는 우리 영화 '워낭소리'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감동을 전할 수 있느냐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고 볼 수 있다. 감동은 그렇게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
범죄, 드라마 | 미국 | 116 분|개봉 2009.03.19 |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월트 코왈스키), 크리스토퍼 칼리(자노비치 신부), 비 방(타오 방 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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