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든다. 좋은 것만 보일뿐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탓이다. 그래서 사랑은 맹목적이다.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게 되고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게 된다. 주위를 둘러볼 수도 없고 다른 기회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 오직 지금, 그리고 오직 한 사람하고의 사랑만이 존재의 의미가 될 뿐이다. 게다가 사랑은 사람의 이성도 마비시킨다. 그런 이유로 언제나 이성보다는 감성에 끌려다니게 된다. 눈이 멀고 이성이 마비되어버린 상태를 '사랑의 포로'라고 표현하는 것도 스스로를 어찌하지 못하는 이유에서다.
질투도 마찬가지다. 질투도 사랑과 똑같이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게다가 맹목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질투도 사랑의 변형된 형태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부분 도를 넘어선 질투는 잘못된 사랑일 때가 많다. 아니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까닭에서다.
물론 사랑도 질투도 시작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는 부분에서 보면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방법이 틀린 탓이다. 사랑은 배려가 수반되는데 반해 질투는 강요가 따른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랑이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질투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한 마음은 사랑이고 사랑에 집착이라는 불순물이 추가되면 질투가 된다. 시작은 같지만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고려 '공민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쌍화점'은 이렇듯 한 남자의 사랑과 한 남자의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에 눈이 먼 한 남자와 질투에 이성을 잃은 한 남자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그랬기에 너무도 잔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랑과 질투가 하나일 수 없듯이 사랑에 빠진 남자와 질투에 사로잡힌 남자의 운명도 결코 순탄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상대가 절대권력자인 임금과 그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신하의 관계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다시 말하지만 영화 '쌍화점'은 한 남자의 사랑과 한 남자의 질투를 그린 영화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 혹은 질투가 아니라 남자와 남자의 사랑 그리고 질투에 대한 보고서인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포스터에도 '금기의 기록'이라는 문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동성 간의 사랑은 떳떳하게 드러내놓을 수 없는 사정에 있으니 그 옛날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쌍화점'에서는 역사를 뒤흔들었던 금기의 사랑이 133분 동안 펼쳐지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쌍화점'은 볼만한 영화였다. 영상미도 뛰어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공민왕' 역을 맡았던 주진모의 연기가 흡족했는데 차분하고 안정적인 말투가 역할에 꼭 들어맞아 보였다. 그동안 아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일부러 주진모를 외면해 왔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나도 주진모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발견은 '주진모'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사극을 접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이렇듯 역사를 마음대로 찢어놓아도 되나 하는 점이었다. 어차피 100% 사실을 담고 있는 역사는 없을 테니 어느 정도 상상력은 필요하겠지만 야사도 아니고 허구에 불과한 이야기가 정사처럼 받아들여져도 되는 것인지 하는 생각에 항상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영화 '쌍화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민왕이 어려서부터 관리해온 친위부대 '건룡위'는 후기에 만들어졌다고 하고 홍림과 통정하게 되는 왕비는 왕후인 '노국공주'가 아니라 후비인 '익비'라고 한다. 더구나 공민왕이 남색을 탐했던 것도 왕후였던 노국공주 사후의 일이라고 할 뿐만 아니라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했던 세력들이 역사적 당위성을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라는 말도 있다. 어차피 역사란 승자의 것이기에.
고교시절 역사 시간을 통해 배워서 알고 있듯이 고려 '공민왕'은 기울어져 가는 고려를 다시 세우고자 노력했던 혁명가였다. 원나라가 쇠퇴해지자 원나라 배척운동을 일으켰고, 1352년(공민왕 1) 변발(辮髮)·호복(胡服) 등의 몽골 풍도 폐지하였다. 몽골 연호·관제를 폐지하고 100년간 존속한 쌍성총관부를 쳐서 폐지하는 등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1368년 명(明)나라가 건국하자 이인임(李仁任)을 보내어, 명나라와 협력하여 요동에 남은 원나라 세력을 공략하였다. 1369년 이성계(李成桂)로 하여금 동녕부(東寧府)를 치게 하여 오로산성(五老山城)을 점령, 국위를 크게 떨치기도 했다. 내정에서는 정방(政房)을 폐지하고, 신돈(辛旽)을 등용하여 귀족이 겸병한 토지를 소유자에게 반환시키고,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을 해방시키는 등 개혁적인 정치를 베풀었다.(두산백과사전 참조)
하지만 영화에서는 '공민왕'의 이러한 역사적 치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남색을 탐할 뿐만 아니라 욕정과 질투에 눈이 멀고 이성을 잃은 호색한으로만 보일 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도 1365년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그녀를 추모하여 불사(佛事)에만 전심하였고 신돈에게 정치를 맡겨 국정이 문란해지도록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홍륜(洪倫)이 익비(益妃)를 범하여 임신시키자, 이를 은폐할 의도로 홍륜·최만생(崔萬生) 등을 죽이려다가, 그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가 호색한으로만 남아야 할 위인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에 신중하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하나, '쌍화점'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출이다. 조인성과 주진모의 노출, 그리고 조인성과 송지효의 정사신은 불편하기는 했어도 볼 만은 했다. 금기된 사랑을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서라도 과도한 정사신은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그 이야기만으로 133분을 끌고 가기에는 흡입력이 다소 부족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임금에게 불충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아끼던 장수를 죽이려고 했던 망령이 다소 막장으로 보였던 것도 영화의 흡입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일부에서는 마치 노출을 위한 영화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쌍화점
드라마 | 한국 | 133 분 | 개봉 2008.12.30 | 감독 : 유하
주연 : 조인성(호위무사, 홍림), 주진모(고려 왕), 송지효(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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