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더와 스컬리가 돌아왔다. 인디아나 존스도 돌아오고 강철중도 돌아온 2008년에 멀더와 스컬리도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멀더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리고 예전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등장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잊고 아직도 현역인 줄 착각하던 인디아나 존스나 나쁜 놈 혼내주겠다는 사명감보다는 대한민국 경찰이 지겨워 죽겠다던 강철중처럼 멀더 또한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는 인디아나 존스와 강철중처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실이 되어주었다. 얼굴의 주름과 불룩해진 뱃살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어도 우수에 잠겨있는 멀더의 눈빛은 여전했지만 영화에서 멀더는 없었다. 도대체 이 영화가 엑스파일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멀더 역을 맡았던 '데이빗 듀코브니'가 나오고 스컬리 역을 맡았던 '질리안 앤더슨'이 나오는 영화일 뿐 이 영화는 엑스파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둘이 같은 영화에 출연한다고 모든 영화가 엑스파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이미지를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엑스파일이라고 우겨서도 곤란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엑스파일이 아닌 치명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멀더와 스컬리가 없어도 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멀더의 역할은 '영매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일 뿐이고 스컬리의 역할은 '멀더와 연락되는 유일한' 사람일 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이제야 FBI가 멀더를 찾는 이유도 설득력이 부족하고 그렇게 연락이 닿았던 멀더의 활약은 더욱 부족했다. 그리고 멀더를 도와 과학과 초자연 속에서 균형을 잡던 스컬리의 역할도 거의 볼 수 없었다. 도대체 감독이나 제작자는 어디에서 엑스파일의 흔적을 찾으라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일까?
자, 다시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엑스파일에는 멀더와 스컬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엑스파일로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럼 아무나 멀더와 스컬리라고 나온들 그들을 인정해 줄 수는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멀더는 '데이빗 듀코브니'가 맡아야 하고 스컬리는 '질리안 앤더슨'이 맡아야 한다. 그럼 다 된 것인가? 그렇게만 된다면 엑스파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그런 줄로만 알았다. 멀더와 스컬리, '데이빗 듀코브니'와 '질리안 앤더슨'만 있으면 엑스파일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칠 수 있었다. 영화가 엑스파일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엑스파일 답다는 건 무엇인가. 멀더가 멀더답고 스컬리가 스컬리답고 영화가 영화다워야 한다는 건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기에는 쉽지 않다. 멀더답다는 것과 엑스파일다워야 한다는 것은 느낌일 뿐 말로 이렇다 저렇다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다만 이 영화의 주연을 '다른 사람들이 맡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결론은 그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엑스파일을 전면에 내세웠을 때보다 흥행에서는 불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엑스파일이 아닌 영화를 엑스파일이라고 우겨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엑스파일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이자 엑스파일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사기와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부제는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였지만 영화를 보고 난 관객에게는 '나는 믿고 싶지 않다'로 기억될 것이다. 이 영화가 엑스파일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고 멀더와 스컬리가 이제는 엑스파일의 주연이 아니어도 된다는 점을 믿고 싶지 않다. 그 둘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FBI 요원들이기 때문이고 그들은 아직도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음을 믿고 있는 명콤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The X-Files: I Want To Believe, 2008)
미스터리, SF, 모험 | 미국, 캐나다 | 104 분 | 개봉 2008.08.13 | 감독 : 크리스 카터
주연 : 데이빗 듀코브니(폭스 멀더 요원), 질리안 앤더슨(대너 스컬리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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