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면 위험한 연극 학교괴담-동상의 저주 내가 사는 세상


매운 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통 맛이라고는 못 느끼겠고 오직 고통만이 느껴지는 이유에서다. 그걸 맛있다고 먹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맞아도 안 아프다고 할지 모르겠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입장에서는 매워서 느끼는 고통이나 맞아서 느끼는 고통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공포류도 다르지 않다. 무서운 영화를 재미있어 하면서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매운 음식을 맛있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매운 맛이 주는 통증만큼이나 공포 영화가 주는 정신적인 통증도 짜증나기는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매운 맛과 공포 영화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대학로 이수스타홀에서 공연되었던 연극 '학교괴담 - 동상의 저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공포물이다. 해마다 7월 10일이면 학교 동상에 이름을 남기고 목을 메 자살하는 학생이 생긴다는 괴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매운 맛만큼이나 싫어하는 공포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즐기는 일 뿐인데 과연 내가 공포물을 보면서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매표소부터 으시시하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역시 눈에 잘 띄지 않기도 한다. 매표소에서는 괴기스러운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관객이야 잠깐 왔다 가니 그렇다 쳐도 그 노래를 계속 듣고 있을 작품 관계자는 괜찮을까 싶은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공연에 앞서 알려주는 주의사항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음산한 목소리로 대신한다.

공포물답게 불이 꺼졌다 들어올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진다. 객석에서는 비명과 함께 짜증어린 탄식도 들린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평소에 즐기지 않던 아니 싫어하던 장르였음에도 비교적 짜임새 있게 만든 스토리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불이 꺼졌다 들어올 때마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혼자는 위험할 듯하다. 의지할 누군가도 없이 혼자서 관람한다면 재미보다는 짜증이 앞설지도 모른다. 그러니 연인과 함께 가길 바라고 그렇지 않다면 동성이라도 동행하기 바란다. 손을 잡거나 껴안는 등의 퍼포먼스는 기대할 수 없어도 충분히 의지는 될 것이다. 물론 이성과 함께라면 서로의 손을 굳게 잡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그와는 정반대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만.

임민아(한수아 역), 김지율(신혜리 역), 김부연(김현정 역), 김승민(강민혁 역) 등 출연배우 4명 배우 중에서 혜리 역을 맡은 배우 김지율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글래머 스타일의 몸매도 그렇지지만 탤런트 최정윤을 연상시키는 미모의 배우였다. 공포물이므로 배우들은 저마다 목청을 높여야 하는데 매일 밤마다 저렇게 소리를 질러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적인 기록, 노예12년 내가 사는 세상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종교나 피부 색깔은 물론이고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도 차별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영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2013)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흑인들에 대한 기록이자 인간이기를 거부한 백인들에 대한 기록이다.

뉴욕에서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사기극에 휘말리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1840년대 노예 수입이 금지되면서 자유주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단의 꼬임에 넘어가게 된 것. 좋은 수입을 보장하는 그들을 따라나섰던 게 화근이었다. 자유인의 신분을 주장해 보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혹독한 매질이었다.

노예 상인은 자유인 솔로몬을 노예 플랫으로 둔갑시켜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로 끌고 간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나마 착한 주인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만나 비교적 순탄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지만, 노예 감독관과의 마찰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후에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엡스(마이클 패스벤더)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솔로몬이 노예로 팔려간 것은 1841년으로 아직 노예가 해방되기 전이었다. 미국 남부와 북부가 전쟁을 벌인 남북전쟁이 1861년부터 1865년까지이고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1863년의 일이니 약 20년 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공업지대인 북부에서는 흑인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어 있었던 반면, 흑인들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농업지대인 남부에서는 개인 재산의 일부로 인정 받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노예에 대한 비인간적인 제도에 대해서 분개하게 되지만 그보다 더 치를 떨게 만드는 것은 인간을 가축으로 취급하는 농장주들이 신과 성경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한다. 특히, 농장에 목화 농장에 2년 연속 흉년이 들자 미개한 것들이 주를 섬기지 않아서라며 오히려 노예들을 더욱 학대하기도 한다.

농장주에게 있어 신과 성경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 불의를 합리화시켜 주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었다. 노예들과 함께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도 하지만 그로써 자신들의 도리를 다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사람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과 검은 피부 여인의 육체를 범하는 일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종교인들은 '신의 뜻'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곤 한다. 신의 뜻이 이러하니 이래도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의 뜻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기 체면일 뿐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꾸준히 신의 뜻을 살피는 일에 불과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농장주들의 신앙이 불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치 신의 뜻이 노예를 부리고 그들의 몸을 함부로 해도 된다고 하니 말이다.

미국 노예에 대한 영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드라마 '뿌리'(Roots, 1977)였다.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쿤타 킨테라는 소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드라마였다. 그에 비하면 '노예 12년'은 다소 밍밍한 느낌이다. 노예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노예 제도에 대한 고발보다는 12년간 노예로 살아야 했던 개인의 억울함에 촛점을 맞췄기 때문일게다.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2013) 
드라마 | 미국, 영국 | 134분 | 2014.02.27 개봉 | 감독 : 스티브 맥퀸
출연 : 치웨텔 에지오포(솔로몬 노섭), 마이클 패스벤더(에드윈 엡스), 베네딕트 컴버배치(포드)

죽음의 신화와 삶의 역사 사이에서 방황하는 폼페이


역사와 신화 중간쯤에 속하는 도시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서기 79년 8월 24일 한순간에 지구 상에서 자취를 감춘 폼페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하루아침에 사라지면서 신화의 일부가 되었던 폼페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92년 한 농부가 우연히 우물을 파다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신화가 역사가 되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역사에서 사라지기 전 폼페이는 로마의 축소판이었다. 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를 삼켜서 죽음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로 말미암아 오늘날 로마의 문명을 원형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유적지로 남을 수 있었다. 신화 속에서 죽음의 도시였다가 이제는 역사 속에서 삶의 흔적을 증언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Pompeii, 2014)은 이처럼 폼페이에서 살다 죽어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재난영화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이 비교적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나름대로 볼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상태라면 그런대로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라고 하겠다. 천재지변 속에서 싹 틔운 사랑도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치명적인 몇 가지 결함으로 인해 몰입을 방해하는 점은 다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이야기의 근간이 그리 신선하지 못하다. 노예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부모님에 대한 원수와 복수, 그리고 검투사의 애환 등은 멀게는 '벤허'(Ben-Hur, 1959)에서 다룬 내용이고 가깝게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에서 이미 본 내용이다.

그래도 스토리의 얼개가 촘촘하다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를 못하다.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반란군을 진압하는 로마군의 모습은 충분히 스펙터클했으나 그 이후는 지나치게 우연을 남발하고 있었다. 노예로 팔려간 주인공 마일로는 느닷없이 잉글랜드의 검투사로 나타나더니 갑자기 폼페이로 팔려가는데 동기나 이유에 해당하는 중간 부분은 모두 생략되고 없다. 그저 영화가 폼페이를 배경으로 하니 폼페이로 갈 뿐이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이라고 한다면 로마의 상원의원 코르부스로 등장하는 키퍼 서덜랜드라고 하겠다. 그가 누군가. 미국 본토를 핵 위험과 각종 테러에서 구해내고자 하루 24시를 꼬박 바쳐 개고생하는 잭 바우어가 아니던가. 그가 선인이건 악인이건 상관없이 그의 입에서는 '댐잇 클로이'라는 대사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극장에서 미드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100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었던 것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뚜렷한 경쟁작이 없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액션 장면이 나름대로 볼만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억지가 억지를 낳기도 하지만 눈 감아줄 만 하고 남자 주인공 마일로 역을 맡은 키트 해링턴의 깔끔한 용모도 인상적이다. 또한, 화산 폭발과 지진, 해일 등의 장면들도 군더더기 없어 보인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폼페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다면 교육방송 EBS 다큐프라임을 먼저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수준 높은 로마 문명과 폼페이의 생활상, 그리고 유물 탐사에 이르기까지 깔끔하게 정리했으므로 먼저 보고 나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2월 25일에 방영 다큐프라임 133회 '제국의 도시 - 폼페이' 편)

폼페이(Pompeii, 2014)
액션, 모험, 드라마, 멜로/애정/로맨스 | 미국, 독일 | 104분 | 2014.02.20 개봉 | 감독 : 폴 W.S. 앤더슨
출연 : 키트 해링턴(마일로), 에밀리 브라우닝(카시아), 키퍼 서덜랜드(코르부스), 캐리 앤 모스(아우렐리아)

아카데미가 선택한 남자들의 눈부신 연기,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내가 사는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약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보받게 된다면 그러한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럴 리 없다며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남은 시간을 신변정리를 위해 쓸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더 방탕하게 살 게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2013)에 등장하는 론 우드루프의 경우에는 후자에 속한다.

잠시 실신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론은 의사로부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왔고 현재의 몸 상태로 보아 약 30일 정도밖에는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술과 담배와 마약에 쩔어 살기는 했어도 평소 로데오로 다져진 몸이었으니 건강 하나는 자신하던 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남은 시간은 30일에 불과했지만 론은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결과를 믿지 않는 이유에서다. 평소 그의 섹스 상대는 여자뿐이었다. 남자끼리 섹스하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성격이다 보니 에이즈에 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론이 자신의 검사 결과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예전처럼 술과 담배와 마약과 여자를 끼고 살았다.

하지만 30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은 작지 않았다. 더구나 몸도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게 느껴졌다. 결국,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 알아보던 론은 에이즈가 반드시 남자와의 동성애로만 전염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독하지 않은 주사기로도 옮을 수 있고 섹스할 때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직업여성과의 성관계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남자와 그가 벌인 투쟁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가 맞서 싸우는 대상은 가깝게는 에이즈라는 질병이지만 대상을 확대하면 에이즈에 대한 일반의 편견과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의 부당한 대우라고 할 수 있다. 불과 30일밖에는 살지 못할 거라던 남자는 그 후로도 무려 7년이나 생존했는데, 이 영화는 그 7년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에이즈라는 질병과 싸우기 전에 론은 먼저 사회적 편견과 맞서야 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에이즈는 호모나 게이, 즉 동성애자에게 걸리는 천벌이라고 치부되던 시대였던 탓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벌레 보듯 하는 시선도 무리가 아니었다. 침으로도 전염될 수 있다고 믿을 정도였으니 사회생활은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친한 친구들도 멸시에 찬 시선을 보내기 일쑤였다.

또한 환자들을 실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의료기관도 문제다. 제약회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의사들도 환자를 살리기보다는 신약 판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에게 에이즈 환자는 살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용 대상에 불과했다. 죽어가던 론이 병원의 치료를 거부하고 멕시코에서 희망을 찾았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사라고 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에이즈 치료에 효과적인 약이 있음에도 미국 식품의약청인 FDA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게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그러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FDA냐고 묻는다. 정식으로 들여올 수 없는 약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고 밀수입도 하지만 론이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그에게서 어쩔 수 없이 약장수 냄새가 풍긴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 제목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론이 에이즈 환자들에게 약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회원제 단체 이름이다.

지난 2014년 3월 3일(한국 시간) 열렸던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화제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 2013)의 크리스찬 베일을 따돌리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다. 그리고 또 한사람, 남우조연상의 자레드 레토 역시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에서 선택을 받았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아카데미가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왜 매튜 맥커너히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무려 20KG이나 체중 감량을 할 정도로 철저히 론으로 변신했다. 그와 더불어서 자레드 레토의 특별한 매력에 빠지게 되는데, 남자가 보기에도 사랑스러울 정도였다. 매튜 맥커너히의 열연도 볼만했지만 자레드 레토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2013)
드라마 | 미국 | 117분 | 2014.03.06 개봉 | 감독 : 장 마크 발레
출연 : 매튜 맥커너히(론 우드루프), 제니퍼 가너(닥터 이브 삭스), 자레드 레토(레이언)

겨울왕국보다 철학적이고 감동적인 레고무비 내가 사는 세상


운명을 거부하고 편안한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고난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영화 '레고무비'(The Lego Movie, 2014)가 던지는 주제는 이처럼 결코 가볍지 않다. 아니 오히려 묵직하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가야 할 애들 영화가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다. 이 영화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레고무비'는 레고에 대한 영화이자 레고로 만들어진 영화다. 외국에서는 수많은 폐인과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애들 장난감으로 치부되는 바로 그 '레고(Lego)' 말이다. 그러니 영화 제목이나 포스터만 보고 극장으로 뛰어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물론 애들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제외하고.

나 자신도 처음부터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애들이나 볼 영화라고 생각했던 이유에서다. 더구나 스토리가 빈약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 2013)에 실망한 터라 더욱 그랬다. 그러다 애들 영화라는 편견과 레고로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말을 듣고는 한 번쯤 봐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돈 들여 시간 들여 일부러 극장을 찾은 이유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서울에서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와의 요금 분배(일명 부율)에 대한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서울지역 CGV와 롯데시네마가 상영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에 개봉했던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The Hobbit : The Desolation of Smaug, 2013)에 이어 또다시 파국으로 치달은 결과였다. 그나마 메가박스에서 상영하고는 있었지만, 관객이 많지 않아 시간대가 일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를 보면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레고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대단히 완벽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렇고, 스토리 또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짜임새가 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 속에 들어있는 철학적인 부분도 대단히 깊이 있다는 점에 놀라웠다. 애들 영화로 평가절하되었다는 점이 안타까웠고 나 스스로도 애들 영화로 치부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거대한 음모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용사와 선택받은 일꾼이라는 설정은 키아누 리브스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낸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999)를 떠올리게 만든다. 평범했던 도시의 건설노동자가 오래된 예언대로 세상을 구할 메시아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렸으니 어찌 보면 '매트릭스'의 레고 버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철학이니 감동이니 하는 표현들이 지나쳐 보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메시지가 숨어있다. 하나는 레고가 전시용이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고가 특정한 사람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들 힘겹게 레고를 만들어놓고는 부서질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막아서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절대자에서 절대악으로 변신하는 프레지던트 비지니스의 욕망이 바로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레고의 정교한 시스템에 질린 사람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누구든지 망설이지 말고 용기 내어 조립해 보라고 권한다. 처음부터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든 그것이 바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들처럼 만들지 못하는 자신의 손재주를 원망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레고로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는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테이큰'(Taken, 2008)과 '논스톱'(Non-Stop, 2014)의 리암 니슨이 배드캅/굿캅의 목소리를 맡았고 흑인 노장 연기자 모건 프리먼이 예언자 '비트루비우스' 목소리를 맡았다. 절대자에서 절대악으로 변신하는 프레지던트 비지니스의 목소리는 '메가마인드'(Megamind, 2010)에서 메가마인드의 목소리를 맡은 바 있는 월 페렐이 맡았다.

애들 영화로 알고 봤다가 내가 더 반한 영화 중에는 '토이스토리'(Toy Story, 1995)와 '업'(Up, 2009)이 있다. '토이스토리'는 내 안에 숨어있던 동심을 자극한 영화였고, '업'은 사랑과 부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레고무비'다. 레고로 만들어진 세상을 보는 재미 못지않게 상당히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레고무비(The Lego Movie, 2014)
애니메이션, 액션, 코미디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 100분 | 2014.02.06 개봉 | 감독 : 필 로드, 크리스 밀러
출연 : 윌 페렐(프레지던트 비지니스), 리암 니슨(배드캅/굿캅), 모건 프리먼(비트루비우스), 크리스 프랫(에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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